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드로니코스 2세 (문단 편집) ===== [[바페오스 전투]] ===== [[오스만 1세]]는 [[1282년]] 부족장의 자리를 이어받았다. 그리고 약 20년 동안 동로마령 [[비티니아]]에 여러번 침입하여 제국의 골칫거리가 되었다. "팔레올로고스 시대의 [[벨리사리우스]]"로 일컬어지는 [[알렉시오스 필란트로피노스]]가 [[오스만 제국군|오스만군]]을 상대로 선전했으나, 그가 모종의 이유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명형에 처해진 뒤에는 속절없이 밀렸다. [[1301년]] [[오스만 베이국]]은 [[니케아 제국]]의 수도였던 [[니케아]]를 [[포위]]했고, 여러차례 프루사를 공격했다. 또한 근처 [[농지]]를 황폐화하고 [[니코메디아]]를 굶기겠다고 협박을 했다. [[1302년]] 봄, [[공치제|공동황제]]였던 [[미하일 9세]]는 마그네시아 방면 원정을 계획했다. [[튀르크인]]들은 [[동로마군]]의 수에 압도당하며 전투를 피해다녔다. 그 과정에서 동로마군은 너무나 깊숙히 진격해 버렸고 결국 그들은 마그네시아에서 고립되게 된다. 결국 징집병들은 그들의 가족과 집들을 지키기 위해서, [[알란족]]은 [[트라키아]] 일대의 그들의 가족들을 지키기위하여 떠나면서 동로마군은 전투없이 와해되고 만다.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하일도 막대한 난민들과 함께 해상으로 철수했다. 이후 니코메디아를 구원하기위해 안드로니코스는 메가스 헤타리아 요르요스 무잘론[* [[미하일 8세]]의 소산드라 쿠데타 당시 살해당한 [[섭정]] 요르요스 무잘론과는 [[동명이인]]이다.]에게 2천의 군사를 주어 보냈고 1302년 6월 27일 바페오스 평원에서 (아마도 니코메디아 인근) 오스만 1세가 이끄는 5천의 튀르크군 경기병대와 조우했다. 5천의 오스만군은 오스만 1세의 군대 뿐만이 아니라 그의 동맹인 파플라고니아와 메난드로스 강 인근 튀르크군도 포함되어 있었다. 튀르크의 돌격이 시작되자 전투에 관심없었던 [[알란족]]들이 철수 하기 시작했고, 동로마군의 전열은 붕괴되었다. 요르요스 무잘론은 남아있는 군사를 이끌고 니코메디아로 후퇴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